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한 데스크에서 한국 주식을 본다. 이 기고문에서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회사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시장에 대한 솔직한 관찰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돌아온 이유로 자주 인용되는 두 가지는 첫째 '밸류업' 정책, 둘째 AI 메모리 호황이다. 이 둘은 모두 맞지만, 가장 큰 단일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외국인이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일본의 트레이드를 이어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베팅이다. 2024~2025년 일본 닛케이의 재평가 — 코퍼레이트 거버넌스 개혁, 자사주 소각, ROE 압박 — 가 글로벌 자금을 끌어모은 뒤, 그 자금은 다음 후보를 찾고 있다. 인도와 한국이 후보였고, 인도는 인프라 부족과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일부 자금이 빠졌다. 그 자금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밸류업'은 그 베팅의 정당화 장치일 뿐, 베팅의 원인은 아니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한가. 만약 밸류업 정책이 가시적인 PBR·ROE 개선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 즉 정책이 '빈 자리'로 드러난다면 — 외국인 자금은 같은 속도로 빠진다. 일본 사례가 글로벌 자금에게 보여준 것은, 거버넌스 개혁이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자사주 소각·배당 인상·이사회 재편이라는 행동을 동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그 행동이 충분히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가? 솔직히, 아직 아니다. 자사주 소각 발표가 있는 종목은 일부에 그치고, 이사회 다양성과 독립성에서는 일본보다 한 박자 늦다. 외국인은 이 부분을 매우 정확히 본다.
따라서 코스피가 10,000을 넘을 수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메모리 두 종목의 다음 분기 실적이 아니라, 비메모리 코스피 상장사들이 향후 12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자사주를 소각하고 얼마나 많은 사외이사를 새로 영입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밸류업'은 이정표가 아니라 결국 빈 자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