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서 가장 오래된 가격 질서 —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비싸야 한다는 — 가 마침내 깨졌다.
5월 14일 한국거래소 마감 기준 SK하이닉스(000660)는 1,976,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1,990,000원까지 올라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같은 날 삼성전자는 +1.79% 상승한 284,000원에 마감했지만, 시장 참여자들이 주목한 것은 종가가 아니라 두 종목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었다.
SK하이닉스의 선행 PER이 삼성전자를 사상 처음으로 추월했다. 한국 메모리 양대 기업 사이의 밸류에이션 위계가 — 적어도 이날만큼은 — 뒤집힌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표면적인 답은 HBM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에서 가장 두꺼운 점유율과 가장 빠른 양산 일정을 가졌다. 시장은 이를 단순한 사이클 호황이 아니라 '구조적 우위'로 읽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의 시선 변화는 더 직접적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Roundhill이 4월에 출시한 메모리 칩 특화 ETF에는 출시 한 달 만에 60억 달러가 유입됐다. 이 ETF의 보유 비중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절반에 가깝다. 글로벌 ETF 자금은 한국 증시의 가격을 빠르게 바꾸는 새로운 변수가 되었다.
그러나 — 추월의 순간 자체가 신호일 수 있다
하나증권은 5월 18일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추월하는 그 순간 자체가 시장 거품의 신호일 수 있다." 메모리 사이클에서 후발주자가 선두를 가격으로 추월한 사례는 흔치 않으며, 그것이 벌어졌을 때는 대개 사이클이 정점 부근이었다는 분석이다.
"패러다임 전환과 사이클 정점은 처음에는 구분되지 않는다. 사후에야 명확해진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지난 6개월 동안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도 50% 이상 상승했지만 속도의 차이가 결국 PER 역전을 낳았다.
다음 변수
이번 주의 추가 변수는 두 가지다. 첫째, 삼성전자 노조의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 총파업이 실제 진행될 경우 메모리 생산 차질이 어느 정도일지. 사내 추정으로는 일평균 1조 원의 손실이 거론된다. 둘째, SK하이닉스가 자사의 2분기 가이던스에서 HBM 출하량 전망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두 종목이 결국 다시 자리바꿈을 할 수도 있다. 다만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가 가장 비싼 메모리 기업'이라는 명제가 더 이상 자동으로 참이 아님은 분명해졌다.